인정욕구를 부정하라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도리어 인정받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이런사람이면 좋겠다는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게 된다.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가령 업무의 목표가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되면 그 일을 하기가 괴롭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전전긍긍하느라 나라는 존재를 억누르게 된다. 

결국 자기 멋대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과제의 분리' 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과제를 분리하라

아이가 과제를 안했을때 부모는 아이에게 과제를 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누구의 과제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마지막, Final으로, 가장뒷단에서)으로 발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를 생각해라.

아이가 공부를 안한다면 지망하는 학교 불합격 등 아이에게 결과가 가게 된다. 부모가 아니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은둔형 외톨이 역시 자신이 방을 빠져나오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된다.




인간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하는 방법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 그 뿐이다.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상대가 나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상대의 과제이지 내 과제가 아니다. 

분리란 이런거다. 


타인의 과제와 내 과제와의 분리.


ex) 상사가 사사건건 딴죽을 건다. 상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일인가?

상사때문에 일을 못한다. -> 인생의 거짓말이다.  일을 내가 못하니깐 싫어하는 상사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구체적이고도 대인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들러의 심리학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으라.

과제의 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면 인간관계가 단번에 자유로워 진다.

과제의 분리는 인간관계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입구다.

인간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다. 과제의 분리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보상을 바라서도 안 되고, 거기에 연연해서도 안 된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말아라. 아이가 끈을 묶는 것을 엄마가 도와 준다거나... 곤경에 직면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곤경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인정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한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 인생을 타인에게 맡기면 되니깐....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선택할 것이가, 아니면 인정 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을 택할 것이가. 중요한 문제이니 생각해봐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고 다른 사람의 안색을 살피면서 사는 인생. 너무 부자연 스럽지 않은가...


인정욕구란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고 싶지 않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하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안색을 살피면서 모든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과제를 분리하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이야 말로 자기 중심적인 발상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진로와 배우자감까지 간섭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 질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경향성 - 본능적인 욕망, 충동적인 욕망. 


욕망이나 충동에 이끌려 사는 것.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돌멩이처럼 사는 것이 '자유' 일까? 그런 삶은 욕망과 충동의 노예가 될 뿐이다. 진정한 자유란 굴러 내려가는 자신을 아래에서 밀어 올려주는 태도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비탈길을 계속 내려가야할까? 그렇게 완성된 모습을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내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괴로운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건 부자연스러운 동시에 불가능한 일이다.

자유를 얻으려면 타인에게 미움을 살 수 밖에 없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수 없다.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라.일부러 나쁜짓을 저지르라는 말은 아니다.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바라는 것은 내과제.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다.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는 거기에 개입할 수 없다.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



인간관계의 카드는 내가 쥐고 있다.

아버지에게 맞아서 사이가 안좋다 - 프로이트의 원인론

나는 아버지와 좋은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서 맞은 기억을 꺼내들었다 -> 아들러의 목적론


어쩌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편이 더 좋은 것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을 아버지 탓으로 핑계를 댈 수 있다.



인간 관계의 카드는 언제나 내가 쥐고 있다.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게 그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타인이 바라는 것을 충족 시키는 삶을 산다.

과제의 분리를 배우면 모든 카드를 내가 쥐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물론 내가 상대를 달라지게 하려고 변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조종하려는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변해도 상대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타인을 조종해서는 안되고 조종할 수도 없다.


인관 관계라고 하면 보통 두사람의 관계 혹은 다수와의 관계를 떠올리지. 그런데 자기 자신이 먼저다. 인간관계에서 인정받는데에만 혈안이 되어있으면 인간관계의 카드는 언제나 남이 가질 수 밖에 없다. 


인생의 카드를 남에게 맡길 것인가, 내가 쥘 것인가의 문제다.


ex) 내가 먼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변했다. 그러더니 늙은 아버지가 어느날 고맙다라고 감사의 표현을 했다. 나는 아버지를 물가에 모시고 가는것 까지 했고 아버지는 그 물을 마셔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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