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세계는 단순하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 단 그런 '용기'가 자신한테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있다. 객관적인 세계에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보는 세계의 눈은 전부 달라서 공유할 수 가 없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고루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진리이자 도달점이라 할 수 있다.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론 vs 목적론


원인론: 지금 현재의 결과는 과거에 의한 영향으로 나온 결과이다.



목적론: 사람은 과거 또는, 트라우마와 상관없이 현재 상황의 목적에 맞게 행동한다.

(가령, 방안에 틀여박혀 살며 인간관계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귀찮거나 상처받을 생각에 인간관계를 하기 싫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는 밖으로 나가기 싫다는 목적이라든지...)

이때 과거의 상처는 현재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스스로 인간관계를 못한다는 공포심을 지어내어 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시로는, 가족이랑 못 놀고 나는 일중독자다. -> 그냥 일을 가족보다 더 좋아하고 싶기 때문에 일중독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일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목적(시간이 없다 이런건 일중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스스로 지어낸 불안, 공포, 변명)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떠한 '목적'을 따라 살고 있다.

이것이 목적론이다.




인간은 분노를 지어낸다.


분노란 언제든지 넣었다 뺴서 쓸 수 있는 도구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정중하게 말로 할 수 있다.

분노란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다.

단지 누군가에게 위압을 가하기 위해서, 또는 싫기 때문에  '분노'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목적론에 입각한 설명)





과거에 지배받지 않는 삶


우리는 감정에 지배받지 않고, 과거에도 지배받지 않는다. 우린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과거가 현재를 결정지을 순 없다.

가능성을 생각해라. 인간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라.

우리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인간을 기계처럼 바라보면서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원인론에 입각한 것이 프로이트가 주장한 원인론이다....





소크라테스, 그리고 아들러



당신은 '이대로' 좋습니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이다.



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 한 것

무엇이 주어졌는가에 집착한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교환이 가능한 기계가 아니다.우리에게 필요한것은 교환이 아니라 고쳐나가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선택을 한 경우이다.




소크라테스의 역설

 행위로서의 악은 숱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범죄자든지 순수하게 나쁜 짓을 하려는 의도로 한 것이 아니다.

모든지 마땅한 이유가 있다. 당사자에겐 이 또한, 선의 수행이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람은 어느 단계서인가 불행한 상태를 택했다. 자신에게 불행한 상태를 선이라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 고 결심한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생활양식(인생을 사는 방식) 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주장한다.

그사람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의미 부여방식을 집약시킨 개념이 생활양식이라 생각하면된다. 좁게는 성격에서부터 넓게는 그 사람의 세계관이나 인생관 까지 포함한다.


ex) 나는 비관적인 사람이야 ->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질이나 성격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생활양식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예로들면 불행한 상태, 꼬인 성격을 직접 선택 했다라고도 할 수 있다. 다행인것은 생활양식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선택하는 것도 가능 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라고 결심 했기 떄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활양식을 선택한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것은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결심해왔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하면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 지금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져서 이대로 변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에 이대로의 나로 살아간다면 눈앞에 닥친일을 어떻게 대처야할 지 , 그 결과 어떤일이 일어날지 경험을 통해 주측 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서 불안한 삶을 살 수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대로의 나로 사는 것이 더편하다고 생각하고 살게된다.

변하고는 싶지만 변하는 것이 두렵다 라고 할 수 있겠다....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다.우리는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하다.




나의 인생은 '지금, 여기' 에서 결정난다.

먼저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해라. 생활양식을 바꾸는것을 통해서 실패(뭔가에 도전을 한다거나 새로운거에 도전)를 한들 어떠한가.

단지 한순간일 뿐이고 다른길을 또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다.

시도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도 없다.



해야할 일을 두고 '할 수 없는 이유' 를 이리저리 찾는게 더 고달픈 삶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변할 수 밖에 없다' 자네는 '자네'인 채로 그저 생활양식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다시한번 말하자만 아들러의 목적론은 아래와 같다.


->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 지금 여기' 를 사는 나이다.

+ Recent posts